에릭클랩튼 VS 지미페이지 VS 제프벡ㅣ기타는 역시 XXX가 잘치지 𝐏𝐥𝐚𝐲𝐥𝐢𝐬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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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 On Premiered Aug 12, 2022

#지미페이지 #에릭클랩튼 #제프벡 #3대기타리스트 #야드버즈



지미페이지

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인 레드 제플린의 리더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주로 쓰는 기타는 레스폴으로, 그 기타의 상징격 인물이자
영국 하드록, 헤비메탈의 상징으로도 통한다.
또한 록 기타리스트 중에서는 지미 헨드릭스, 앵거스 영, 에릭 클랩튼,
에디 밴 헤일런 등과 함께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기타리스트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를 꼽을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인물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순위를 꼽는다면 아무리 저평가받아도
웬만해선 세 손가락 안에는 드는 기타 역사상 최고의 인물들 중 하나이다.
전성기 시절 영국 음악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기타리스트인 동시에
영국 음악계 뿐만 아니라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로도
자주 꼽히는 살아 있는 전설이다.


제프벡

그는 에릭 클랩튼, 지미 페이지와 달리 상업적으로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상업적인 성공과 이미 완성한 연주기법에 머물러 안주했던 그들과 달리,
끊임없이 자신의 연주기법을 실험하고 새로운 연주기법을 도입하며
연주패턴을 변화하고 발전시킨 기타리스트로,
기타리스트 본연의 자세론 가장 존경받는 기타리스트이다.

그는 초기에 결성된 멤버로 밴드를 계속 이어갔다면 멤버들의 뛰어난 실력에 의지하여
충분히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어 안락하게 지금까지 밴드활동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계속 음악적 스타일을 변화시켜가며 실험하면서
그때마다 밴드를 해산하고 새로운 멤버를 맞아들여 자신의 음악적 스타일에 맞는
밴드를 결성하고 가장 그 음악적 컨셉에 맞는 작품을 발표해왔다.

그래서 그에게서 딱 한가지 음악적 특성을 정의한다는건 바보같은 짓이다.
그는 초기에는 누구나 그랬듯 블루스에 기초한 록 연주를 들려주었고
이후 최초의 하드록/헤비메탈 스타일의 연주를 들려주었지만,
이후 재즈적인 연주나 컨트리/서던록에 기반한 연주쪽으로 기울기도 했고,
잠시 초창기 로커빌리같은 연주를 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노년기에 들어서도 실험적인 정신은 쇠퇴하지 않아 90년대 이후엔
테크노나 일렉트로니카에 경도된 연주도 시도하기도 했다.

현재 왼손은 코드를 짚기만 하고 핑거스타일로
검지와 엄지 등으로 현을 치는것과 동시에
나머지 손가락으로 비브라토 암을 흔들거나 치면서
독특한 톤을 내는 연주의 스타일을 완성했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 25주년 공연에서
비틀즈의 A day in the life를 연주하는 영상을 보면
어떤 스타일인지 알 수 있다.
비브라토 암의 존재 이유를 누구보다 잘 나타내주는 기타리스트고
독보적인 연주실력을 보여준다.

에릭클랩튼

최고의 음악적 성취를 거둔 기타리스트를 꼽을 때 항상 거론되며
동시에 영국을 대표하는 기타리스트, 음악가들 중 한 명이다.
동시에 1960년대 말 이후 록 음악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한
록 음악 역대 최고의 아티스트 한 명이다.
그래미 어워드를 18번 수상하였고,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서 3회 헌액되었다.

20세기 초반부터 이어져오던 정통 블루스를 현대의 록 음악과 결합하여
독특한 장르인 블루스 록을 개척했다는 큰 업적이 있다.
의외로 잘 안 알려진 사실이지만,
크림시절 하드 록과 헤비 메탈의 원형을 제시한 기타리스트이며,
에릭 클랩튼이 없었다면 메탈 기타 주법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가능성이 높다.
메탈 뿐만 아니라 블루스, 소프트 록, 하드 록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어쿠스틱 및 일렉트릭 기타 연주법의 교본으로도 불린다.
록 음악의 불모지인 한국 내에서도 드물게 인기가 높은 음악가중 한명이다.

단순히 기타 연주법이나 장르 개척 등 음악적으로만 성과를 거둔 것이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매우 성공해, 솔로와 크림 시절 판 음반 판매고까지 합치면
1억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올렸다.
이는 폴 매카트니, 밥 딜런, 사이먼 앤 가펑클 등
어지간한 록 아티스트들보다도 더 많은 것이다.
1960년대부터 현대까지 왕성하게 활동해
싱글 정규 앨범만 21장을 냈고 판매고도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는
록 음악의 살아있는 화석중 하나이다.

크림부터 플라스틱 오노 밴드까지 수많은 밴드를 거쳐갔음에도
솔로 시절의 활동으로 더 유명한 음악가이다.
보통 폴 매카트니, 프레디 머큐리, 로버트 플랜트 등
록 음악의 아이콘들은 각각 비틀즈, 퀸, 레드 제플린 등
유명 밴드의 프론트맨으로 활동하면서 유명해진 경우지만,
에릭 클랩튼은 밴드가 아닌 솔로만으로도
비틀즈나 롤링 스톤스, 레드 제플린 등 레전드급 밴드와
상업적이든 음악적이든간에 거의 자웅을 겨룬다는 점에서
에릭 클랩튼이 가지고 있는 개인으로서의 파급력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특히나 기타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름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고,
동종 업계에서도 클랩튼을 존경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가 개최하는 Crossroads Guitar Festival에 나오는 게스트의 면면에서
그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으며,
'Bluesbrakers'란 곡은 퀸의 브라이언 메이가
존경하는 에릭 클랩튼을 생각하며 만든 곡이다.

음악적인 업적 이외에도 사생활 및 인생사는 비극이 가득하다.
몇 가지 일을 꼽자면, 일단 비틀즈의 멤버이자 본인의 절친
조지 해리슨과 함께 패티 보이드를 두고 벌인 세기의 불륜은
록 음악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일화들 중 하나이며,
1990년대 친아들이 집에서 떨어져 사망한 일도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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